국내 첫 존엄사 인정사례인 김할머니가 수많은 논란을 남긴 채 10일 영면에 들었다.

‘존엄사’는 인간적 삶을 살 수 있도록 최선의 의학적인 치료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킬 수 없는 죽음에 임박한 경우,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질병의 의한 자연적인 죽음을 받아들이는 ‘품위 있는 죽음’을 뜻한다.
국내에서는 2008년 11월 28일 김할머니에 대한 ‘연명치료장치제거소송’에서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원고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최초로 존엄사가 법적으로 인정돼 관심을 모았다.

김할머니는 2008년 2월 세브란스병원에서 폐종양 조직검사를 받던 중 출혈로 뇌 손상을 입은 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식물인간 상태로 중환자실에서 지내왔다. 김할머니의 자녀들은 김할머니가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것을 병원 측 과실로 보고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더불어 김할머니가 소생하기 힘들다는 병원 측의 설명을 듣고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병원의 거부로 2008년 5월 국내 첫 존엄사 소송을 진행했다.

김할머니 자녀들은 “어머니의 평소 뜻에 따라 자연스러운 사망을 위해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면서 2008년 5월 서울서부지법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병원에 소송을 걸었다. 또 정부가 존엄사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지 않아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며 헌법소원도 냈다.

2008월 11월 28일 1심에서는 환자의 선택권과 존엄사 추정의사가 인정됐다.

서울서부지법 재판부는 “병원은 김씨에게 부착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고 판결했다. “환자가 죽음을 맞이할 이익이 생명을 유지할 이익보다 더 큰 경우 의사는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구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를 거부할 수 없다”면서 “환자의 치료중단 의사는 환자가 치료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았음을 전제로 명시적으로 표시해야 유효하지만, 의식불명인 경우에는 의식이 있을 당시 현재 자신의 상태라면 어떤 의사를 표시했을 것인지를 추정해야 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3년 전 김모 씨가 남편의 임종을 맞게 됐을 때 생명을 며칠 더 연장할 수 있는 기관절개술을 거부했으며, 가족들에게 ‘내가 소생하기 힘들 때 인공호흡기는 끼우지 마라, 기계로 연명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는 가족의 진술로 김모 씨의 의사를 추정했다.

병원 측은 1심 판결에 불복해 2심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법원의 판단을 묻는 비약상고를 결정했다. 하지만 김할머니 자녀들이 비약상고 제안을 거부했고, 병원 측은 서울고등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지난해 2월 10일 나온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도 1심의 판결을 뒤집지 못했다. 이어 병원 측은 2심 판결에 대해 대법원 상고를 냈으나 대법원도 지난해 5월 21일 원심과 마찬가지의 결정을 내리면서 병원에서는 김할머니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나 김할머니의 자녀들이 제출한 헌법소원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환자 스스로 중단할 권리가 있다 해도 국가가 반드시 법제화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기각됐다.

병원측은 연명치료 중지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 따라 지난해 6월 23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 그러나 김할머니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자발호흡을 되찾았다. 산소호흡기, 항생제, 유동식 등의 치료를 받으면서 건강도 차츰 호전세를 보였다. 이와 관련 연명치료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논란도 제기됐다.

이후 김 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떼고도 201일 생명을 유지했으나 10일 오후 1시쯤부터 호흡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이날 오후 2시 57분 숨을 거뒀다.

한편 의료계는 지난해 10월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환자와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 대상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했으나 법적인 효력은 없는 상태다. 이와 관련 대한의사협회는 관련법 개정과 존엄사로 인한 부작용 방지를 위한 제도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반면 종교계 등은 인위적으로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은 윤리에 어긋나며 생명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남용돼 환자들이 무분별하게 죽음에 이를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단순한 법률적, 의료적 판단이 아닌 생명윤리에 관한 문제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이며 국민의식과 외국사례를 파악해 법제화할지 여부를 앞으로 결정해 나갈 계획이다.

한편, 지난해 국립암센터에서 실시한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대국민 인식 조사’ 결과,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기계적 호흡 등 생명연장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는 ‘존엄사’에 대해 87.5%가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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